귀에 꽂아 둔 이어폰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시간이 얼마나 지 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눈꺼풀을 느릿하게 닫은 후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모조리 흘려보내는 것 같다가도 가락 하나하나를 붙잡는 신경은 선명하다. 혹시 모른다. 새로운 프로 그램에 걸맞은 음악이 흘러나올지. 이런 가벼운 순간조차도 일상에 피겨 스케이팅이 진득하게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눈과 귀가 전부 막혔다. 그래서 아무리 셀 수 없이 봐온 익숙한 인영이라지만,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어깨 위로 가벼운 두 드림이 느껴지고 나서야 은령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충분히 놀랄 만한 상황이었음 에도 그는 놀란 기색은 없었다. 아, 수없이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로 지금쯤 올 것이라 예상하 고 있었던 것인가?
푸른 눈동자가 선명히 드러날 때, 이미 그의 어깨를 두드렸던 서준은 벽을 따라 주르륵 주 저앉고 있었다. 은령의 옆에 자연스럽게 착석하고서는 눈을 찌르는 햇빛이 조금 간지러운 듯 장난스레 미간을 찡그려 보기도 한다. 그제야 한참을 눈 감고 있던 은령은 중천에 떠 있던 해 가 창가를 타고 들어올 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완전히 수평선을 넘어 들 어가고 밤이 찾아올 테다.
“끝났어?”
“응, 조금 전에. 중요한 생각 같은 거... 내가 깬 건 아니지?”
“그냥 음악 듣고 있었어. 겸사겸사 프로그램에 넣을 곡도 고민해보고.”
“헐, 중요한 생각 맞는 거 같은데?”
은령이 고개를 내저으며 가만히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본격적으로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 기 때문에 듣기 좋은 거짓말 하나 없었다. 한쪽 귀에 어중간하게 꽂혀있던 이어폰을 아예 빼 내려고 손을 들었다가 허공에서 뚝 멈춘다. 그때, 흘러나온 음악 소리가 유난히.... 머릿속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다. 은령이 가만히 허공을 바라본다.
서준도 이제 은령을 오래 봤다고 할 만큼 봤다. 그가 순간적인 집중력을 쏟고 있음을 말하 지 않아도 깨달았으므로 구태여 말을 걸려고 하진 않았다. 주황빛의 햇빛의 중앙에 앉아 집중 하는 은령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은 령이었다. 은령이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에서 손을 떼고 빠져 있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는 서 준에게 가볍게 건네준다.
“서준아, 들어볼래? 괜찮은지.”
“하하, 내가 제대로 들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거절하지는 않고 손을 움직여 이어폰을 받아 들었다. 한쪽 귀에 꽂아 넣자 예상과 같이 깊은 무게를 담은 선율이 틈을 주지 않고 흘러나온다. 서준은 저절로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얼굴을 눈에 담았다. 어김없이 그의 음악들은 모두 그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 다. 느릿한 템포로 움직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선율이 빈틈없이 이어지는 사이, 은령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 속에 녹색의 눈동자가 섞여 들어간다. 그 빛은 알 수 없는 색으로 일렁거리더 니, 오래 걸리지 않아 여전히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주황빛으로 번져 들었다. 이상하게도 아직 끊기지 않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선율에 따라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은령이 이 음악을 듣 자마자 손을 멈춘 이유일 테다.
고개는 움직인다. 분명 서준이 먼저 움직인 것 같다가도, 종내에 먼저 닿아온 것은 은령이 다. 단번에 두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연결되어 있는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상하게도,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입술은 벌어졌다 다물리길 반복하더니 결국은 벌어진다. 그 사이로 튀어나온 두 개의 혓바닥이 자유롭게 엉켜 들었다. 햇빛이 눈을 자꾸 찔 러 결국엔 눈을 감았다. 입안의 감각이 완전히 곤두서버린다. 입안을 부드럽게 찌르는 감각이 선명하고, 제 혀끝이 치열을 훑는 감각이 간지럽다.
급하지 않았고, 갈증 내지 않았다. 적당히 부드럽고 다정한 정도로 움직인다. 숨을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충동이 들면 잠시 두 혀의 움직임은 느려졌다가 잠시 후 다시 빨라진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입안에 가득했던 숨은 점점 고갈되고, 머릿속에 공급되어야 할 산소는 줄어든다. 이제는 귓가에서 머물고 있을 게 뻔한 음악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감각 은 단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충동이었던가, 불가피한 일이었던 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가? 그 여러 물음에 답을 할 여유조차 없다.
입술은 떨어질 때가 되어 서서히 떨어졌다. 두 입술 사이로 투명한 실타래가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진득하게 이어진다. 감았던 눈꺼풀을 떠내고 잠시 치워뒀던 초점까지 눈동자로 되돌 릴 때쯤에는....... 두 사람 다 주황빛의 햇빛 속에서 동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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