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준은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리듬의 음악에 맞추어 저도 모르게 신발 끝을 바닥에 툭툭 두드린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신의 앞선 순서의 경기에 고정되어 있다. 한쪽이 상대의 빈틈을 빠른 동작으로 찔러대면 상대는 신속하게 방어한다. 다른 한쪽이 과감한 공격을 시도하면, 순간 적으로 상대에게 빈틈을 보여버린 쪽의 쓰라린 패배. 그는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알고 헤드셋의 전원을 끈 후 옆자리에 조심스레 둔다.
오늘의 상대는 잘 알지 못하는 얼굴의 선수다. 꽤나 긴장한 듯 잔뜩 굳어있는 모습이다. 서준은 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인다. 그러고는 밝게 미소 지으며 가볍게 던지는 한마디, 상대의 긴장으로 굳어있는 표정이 서서히 풀린다.
서준은 훈련이 끝난 후 시원한 물을 벌컥 들이켰다. 수고했다는 코치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그는 숙소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내일까지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려면 오늘 밤까지는 부지런히 편집을 끝내야 했다. 어쩌다 웃긴 영상을 찍어버린 게 아까워 시작한 유튜브가 어느새 구독자 100만 명을 훌쩍 넘긴 건 첫째, 개인 SNS를 잘하지 않는 선수촌 멤버들 덕분이며 둘째로는 선수 본인이 편집하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고 웃긴 편집 방법과 자막 덕분일 것이다.
숙소 방에 들어선 그는 헤드셋을 뒤집어쓰곤 쿵쿵 울리는 음악을 튼다.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노랫말을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서준은 모니터가 켜지기를 기다린다.
그가 이번에 올릴 영상은 그가 속한 펜싱팀이 중심이다. 그는 그의 팀이 좋았다. 나름 팀에서 형 이자 선배의 포지션이 된 서준이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가혹행위를 엄격히 잡았기 때문에 수평 적인 분위기를 지향했지만 서로 예의를 지켰으며,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적으로 어느덧 길게 자란 앞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배배 꼬아대었다. 그나저나 머리가 꽤나 자랐네, 좀 자를까, 아니면 나도 길러볼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니 모니터가 완전히 켜져 뿌연 빛을 내었다.
노래를 대충 오십 곡은 들었나, 꽤나 긴 시간 동안 편집에 몰입해 있던 그는 흐릿하게 밝아오는 새벽의 하늘을 보고는 마른세수만 가볍게 했다. 이렇게 된 김에 그냥 밤을 새울까도 고민하며 그는 완성된 영상을 저장해 두고는 의자에 느릿하게 기대며 기재개를 쭉 폈다. 이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똑똑, 하는 소리와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안 잤어?”
서준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어 보이는 인영에 익숙한 듯 스르륵 웃는다. 동갑의 피겨 선수인 은령이었다. 의자를 문쪽으로 돌리면 익숙한 듯 은령은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응, 뭐 할 게 있어서... 너는 왜 안 잤어?”
“좀 전에 깼는데 다시 잠이 안 오더라고. 곧 경기기도 하니까, 짐 싸고 있었어. 너는 내일도 훈련 있는 거 아냐? 자는 게 좋을 텐데.”
처음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는데, 은령은 살짝 낡은 인형을 하나 들고 있었다. 오래전 서준이 선물한 것이었다. 숙소 안에서는 늘 품에 안고 다니는 걸 알고 있지만, 늘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쑥스러웠다. 은령은 알고 있다는 듯 그저 싱긋 웃었다. 그는 인형 팔을 움직여 그것이 인사를 하듯이 한 손을 흔들게 해 보였다.
“나는 잘게. 경기 잘하고 와.”
“응, 고마워.”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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